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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함께하기/냥이일기

내게도 좋은일이 생겼어요 - 도란이편

내게도 좋은일이 생겼어요

제 이름은 여름이었어요.

엄마, 아빠, 그리고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잘 먹고 잘 싸고 장난감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천방지축 깨 발랄하죠.

곰팡이성 피부염으로 얼굴 털을 홀라당 날려 먹고 치료에 매진한 결과 지금은 거의 나아가고 있구요. 

털도 제법 자라서 잘생김을 얼굴에 바르고 있답니다.

그런데 태어난 지 두 달째 되던 날 어느 집으로 가게 되었어요. 

그곳에서의 생활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다 결국 나는 엄마, 아빠 품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죠.

정말 다행이었어요.

그러다 또다시 어느 집으로 가게 되었는데요…. 

그곳에서는 하루 만에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어요.

엄마 품으로 돌아온 다음 날 또 어떤 집으로 가게 되었네요. 

제 묘생도 참 기구하죠?


도란이 일랑이 만남


이번에는 차를 타고 좀 멀리 가는군요.

이동장 안에 웅크리고 앉아서 날 데려가는 새로운 집사를 살펴보았어요.


이번에는 어떤 집사일까? 

또 나를 때리려나? 

아니면 나를 다른 곳으로 팔아버리려나? 


이전의 기억이 떠올라 불안하고 초조했어요.

가는 내내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심장은 얼마나 또 쿵쾅거리던지…. 


그렇게 불안해하며 도착한 곳에는 나보다 형이 있어요.

이동장 근처에 다가오더니 나를 째려봐요. 질 수 없죠. 털을 곤두세우고 하악질로 선제공격을 날렸죠.

헐~ 근데 그런 나를 완전히 무시하는 거 있죠? 한번 쓱 보더니 돌아서 버리는 저 시크함은 몰까요?

이렇게 개 무시 아니 고양이 무시를 당하고는 살 수 없죠. 

다시 한 번 한껏 몸을 부풀려 하악질을 하는데….


'이 형 장난 아니다. 유단잔가?'


엄청난 포스로 몸을 부풀리며 짤막한 하악소리... 


오메 기죽어!!! 


어딜 가던지 X개도 집에서는 반 먹고 들어간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네요.

여기서 밀리면 이 집에서 난 이인자로 살아야 하기에 살짝 겁먹었지만, 영혼을 끌어올려 털을 최대한 세우고 목청을 높여 딱!!! 끝!!!


"그 목소리 다물라!!! 하고 이렇게 핵 펀치를 팍!!!"


유단자다. 

나의 공격에도 눈 하나 까닥하지 않는다. 

일단 후퇴다. 

이동장 곁을 계속 서성이는 큰 고양이 형,


'저리 가 저리 가라고!! 나 잠깐 혼자 있고 싶다고!!!


도란이


오는 동안 내내 좁은 이동장안에 있었기에 내가 몸이 덜 풀려 지금 이런 상황이 생긴 것 같다. 

일단 여기서 나가야 한 번 해볼 만할 거 같아. 

집사에게 내가 보내 달라고 해야겠어요.

철망을 붙잡고 내보내 달라고 내 보내달라고 소리를 높였어요.

오분 정도 소리를 질렀을까? 

집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문을 열어 주네요.

문이 열리자마자 압박해오는 이 형,


'나갈 수가 없다!!'


잠시 눈치를 보고 있는데 내가 반응이 없어서 싱거워졌는지 저만치 떨어져 앉아 몸단장하고 있네요.

그 틈을 타 저 형과의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면 일단 새로운 곳의 지리를 파악해야 하니까 살금살금 돌아다녔어요.


저쪽으로 창문이 있고 이쪽은 스크래쳐가 있고, 어디 보자 저 이상하게 생긴 물건의 정체는 무엇일까? 

계단처럼 생긴 것이 올라가는 곳인가 보다….


아뿔싸 너무 지형 파악에만 몰두한 나머지 뒤를 내주고 말았네요.


'치사한 형 같으니라고'


뒤에서 뭐가 번쩍!!! 

이대로 내 목덜미를 내 줄 순 없는 법!!! 

몸을 홱 돌려 앞발질과 하악질로 응수를 해보지만, 무식하게 힘만 센 형…. 바로 깔리고 말았어요.


그렇게 몇 번 을 탐색전과 레슬링을 하다 보니 슬슬 저 형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죠.

덩치에 안 어울리게 소심하고 겁이 많아요. 

저 형! 나를 때리러 오다가도 나랑 눈이 마주치면 눈 피하고 딴 데로 가요. 

어쩌다 나를 덮치긴 하는데 내가 승질 부리거나 아프다고 엄살 피우면 바로 놔줘요.

아무래도 저 형 맘이 약한 거 같아요.

일단은 시간을 두고 때를 기다리면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이번에 온 집은 심심하지 않을 것 같네요.

맘 약한 덩치 큰 형이랑 레슬링도 해볼 만하고 장난감도 많고, 일단 저 형이 닦아놓은 우리 고양이들에게 최적화된 공간이 맘에 들어요.

비록 짧은 묘생밖에 겪진 않았지만,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봐요.

내 예상에 일주일 정도면 저 형이랑 과도 결판이 날 것 같으니 일단 오늘은 이 정도에서 봐주고 내일을 위해 좀 쉬어야겠어요.

아 참 이곳에서의 내 이름은 도란이 라고 불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