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려동물과 함께하기/냥이일기

제2화. 날 그냥 내버려둬!!! 집사야

날 그냥 내버려둬!!! 집사야

짜증 나!!! 혼자 있고 싶다고!!!

낯선 곳으로 끌려와 어쩔 수 없이 집사를 뽑은 것까진 좋다 이거야….

나도 좀 조용한 곳에서 몸과 마음을 추스를 기회는 줘야 하는 거잖아….

세탁기 뒤 먼지 구덩이가 제일 좋은 곳이라 내가 있는 게 아니잖아? 

그저 나도 며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잠시 머물면서 이곳에 대해 적응하려는 것뿐이라고 구역이 어떤지…. 안전한지 알아가야 하는 거라고!!!

너 같으면 생전 처음 보는 곳으로 던져지면 아무 생각 없이 뽈뽈 거리고 다니겠니? 어떤 곳 인지도 모르면서?

하루아침에 내 구역이 사라졌는데…. 나더러 어쩌라는 것이냐? 집사야!

바깥이 시끄러운 걸 보니 집사가 일어났나 보다….


일랑이


"~ 어디 있니? 일랑아~"


근데 왜 쟤는 나만 보면 일랑이라고 부르는 거야? 내 이름은 웬수 라구...

아기 때부터 내 이름은 웬수라고, 집사들의 언어는 모르지만 나도 집사들이 나를 부르는 이름 정도는 알아 듣는다구. 왜~엔쑤!!!

여기저기서 덜그럭거리고 큰 소리가 나는 거로 보아 집사가 나를 찾아다니는 게 분명하군….


머 조금은 당황했을 거야! 자고 일어나면 내가 박스에서 나와 순진무구한 표정과 사랑스러운 눈으로 집사 일었냤냐옹~ 밥주라냥~ 요런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을 테니….


나 그렇게 쉬운 고양이 아니다!!!

'그나저나 배가 고프다.'


'어젯밤에는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둘러보지도 먹지도 못했다. 잠시 상황을 봐서 집사가 집을 비우면 좀 돌아다녀 보고 밥도 먹어야지.'


'이거 그루밍도 못하고 몰골이 말이 아니군'


갑자기 눈앞이 번쩍이면서 아무것도 안 보였다.


'야아~ 이 매너없는 집사야!! 그렇게 갑자기 불빛을 내 눈에 비추면 어쩌라는 거냐? 이 씨~그냥 확 마!!!'


"일랑아! 아이구 우리 일랑이 여기 있었네? 그것도 모르고 아빠가 한참을 찾았잖아. 왜 거기 들어가 있어? 어서 나와"


'아이씨 들켰네…. 야! 야! 일단 불부터 치우라고!!! 눈부셔!!!'


조용히 좀 있으려고 했더니 저 집사넘이 빨리도 나를 찾아 버렸다. 불빛을 피해 돌아앉아 버렸다.

우당탕 세탁기가 흔들거린다.

불빛이 사라지고 싱크대 밑이 환해진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불빛과 멀리서 들리는 집사의 목소리로 짐작건대 싱크대를 어찌해보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아는 싱크대는 그렇게 움직여 지는 게 아니다.

'아 피곤하다. 여기를 집사가 알아버렸으니 또 어디로 옮겨야 하지? 옷장 뒤?'

얼마 동안 시끄러운 발걸음 소리와 불빛이 요란스럽게 춤을 추더니 고요가 찾아왔다.

집사가 포기한 듯하다. 싱크대 앞에서 맛난 밥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아마도 집사가 싱크대 앞에 밥을 놓고 나를 유혹하려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내가 나가서 밥을 먹을 건 아니다.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도 아무거나 막 주는 대로 받아먹지 않을 거다.

눈이 감겨온다. 어제 종일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오늘은 밤까지 잠이나 자야지. 꿈에 엄마가 나왔으면 좋겠다. 볼트 형아도 같이 나왔으면….

엄마~보고 싶다….

우르릉 쿵! 세탁기와 내 몸이 흔들린다.


일랑이 자는 모습


'뭐....뭐지? 지..지진인가? 왜 갑자기 세상이 흔들거리는 거야?'

'어라? 왜 세탁기가 멀어지는 거야? 헉!! 공간이 변하고 있어! 이 시끄러운 소리는 뭐지?'

그렇다. 집사가 세탁기를 움직이는 것이다. 설마 세탁기를 빼버릴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세탁기 너머로 집사의 얼굴이 보인다.

이럴 줄 몰랐지? 하는 집사의 표정이 보인다.

대단한 넘. 세탁기를 빼버릴 줄이야. 그렇지만 나도 만만한 고양이가 아니야!!! 재빨리 싱크대 밑으로 내달렸다. 하수관과 싱크대 사이의 공간으로 몸을 숨겼다.


"야! 야! 왜 거기로 가? 일랑아~ 일랑아~"


집사의 당황한 목소리, 다시 싱크대 밑으로 불빛이 두리번거린다. 싱크대 밑은 인간이 잘 모르는 공간이다. 숨을 곳이 전혀 없을 것 같지만 여기저기 공간이 많다. 수관과 벽면 사이에 공간과 그 위로 꼭대기까지의 공간, 난 그사이의 틈으로 숨었다. 일단 집사랑 눈이 안 마주치는 게 중요하다. 갑자기 집사의 손이 내 다리를 덥석 잡는다.


"일랑아~ 그만 나와~ 거기 드러워~ 나와서 맛난 거 먹자~"


애원하는 집사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나는 모른 체하리라. 나를 잡으려 할수록 나는 더욱 숨을 것이다.

집사와 나의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저 집사 너무 집요하다. 나를 잡으려고 하다 안되니 작전을 바꾼 모양이다. 간식으로 유혹한다.

'바보 같은넘! 간식 따위에 넘어갈 거였음 어제 벌써 넘어갔다구!'

아 근데 하수구 옆이라 그런지 바닥에 물기가…. 


발이 젖어간다. 집사가 빨리 포기를 해야 다른 곳으로 옮길 건데 집사넘이 포기를 모른다.

건너편 세탁기 쪽은 세탁기가 없다. 세탁기는 포기해야 할 듯하다.

발도 찝찝하고 냄새도 고약하고 이거 영 불편하다. 집사야 날 좀 내버려 두라고!!!

한참 동안의 실랑이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집사는 또 계략을 꾸민다.

세탁기 쪽으로 벽을 세운다. 박스로 벽을 세우고 세탁기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를 싱크대 밑에 가두려 하는 것이다.

싱크대 밑으로도 벽이 세워진다. 한쪽 끝으로만 불빛이 보이는 거로 보아 내가 나갈 구멍만 만들어두고 거기로 내가 나가면 잡으려는 것이겠지?

'훗! 아무리 그래 봐야 내가 나가고 싶을 때까지는 안 나갈 거야~ 그러니 포기해!!!'

 

난 지금 이렇게 맘 편히 잘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단 말이야~ 그러니 날 좀 내버려 둬!!!

그렇게 집사와의 전쟁 일 라운드가 지나가고 집사도 잠시 포기하는듯했다. 그러나 잠깐의 판단착오로 집사와의 전쟁 이 라운드가 시작될 거라고는 이때만 해도 상상도 못 했다.

내가 잠시 미쳤다. 집사가 포기한 거로 생각한 내 잘못이지. 서둘러 옮겨갈 곳을 찾기 위해 집사가 쳐둔 그물로 내 발로 뛰어들다니….

살금살금 싱크대에서 고개를 내미는 순간 헐~ 지독한 넘, 집사가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럼 그렇지 니가 안나오고 배겨? 하는 회심의 미소와 함께 손이 쑤욱~ 하지만 내가 누군가? 난 고양이야!!! 인간의 손에 그렇게 쉽게 잡히는 몸이 아니라구!!!

순간적인 판단과 몸의 반응으로 집사의 손을 피해 다시 싱크대 밑 하수구 옆으로 숨었다.

신경질스럽게 싱크대 밑을 막아두었던 벽이 뜯겨 나가고 씩씩거리는 집사의 숨소리와 거친 손이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한계다!!! 이러다가 집사 손에 끌려나가게 생겼다. 고개를 돌려보니 싱크대와 세탁기에 새로 세운 벽 위로 공간이 보였다.

'저기다!!!'

바로 뛰어넘었다.

'집사야 넌 내가 고양이 인 걸 모르는 게냐? 설마 이 정도 높이도 못 뛰어오를 거로 생각한 거냐?'



세탁기 뒤는 그래도 하수구 옆보다는 편하다. 바닥에 물도 없고 삼면이 막혀 있어서 숨기에 적합하다.

나의 뛰어난 운동신경에 집사도 당황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밖에서 짜증 섞인 집사의 소리가 들려온다. 세탁기가 또다시 흔들린다. 집사야 그만 좀 해라. 넌 포기라는걸 모르느냐?

그렇게 집사와 나의 추격전은 세탁기가 네 번을 들락거리고서야 막을 내렸다.

졌다. 내가 졌다.

네 번째 세탁기가 들려 나가고 난 다시 싱크대에 설치된 벽을 뛰어넘으려는데 아뿔싸 싱크대 위에 있던 공간이 사라지고 벽이….

집사가 씩씩거리며 나를 향해 손은 뻗어왔고 난 발톱을 세우며 반항을 했지만 쎄…. 쎄다 인간 포기를 모른다. 고무장갑을 낀 뻘건 손이 나를 덥석 잡아 올린다.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집사는 각오한 듯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몸이 붕 떠오르고 난 결국 잡혀 나왔다. 박스로 감금 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실례를….

겁이나 그런 거 아니다…. 그동안 화장실을 못 간 탓이다!!!


"일랑아!!"


집사의 외마디 비명과 동시에 내 몸은 다시 허공을 가르고 시원한 물줄기는 끊어지지 않는다. 포물선을 그리며 난 그렇게 이동장에 넣어졌고 또다시 낯선 곳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일단 급한 불은 껐다. 내 비록 무서워서가 아니라 급해서 실례했지만 시원하다. 참느라 죽는 줄 알았는데….

앗 이곳은 불길하다. 내 비록 6개월이지만 평생 딱 한 번 겪었던 집사가 목욕이라 불렀던 그것,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는데 숨 쉴 틈도 없이 나의 몸은 물벼락을….

체념했다. 이렇게 된 거 어찌하랴. 포기하는 수밖에….


"어머 아이가 참 착하네요~ 목욕도 잘하고~"


"세탁기 뒤에서 먼지 구덩이에 숨어있는 걸 끄집어냈는데 소변을 봐서요~ 스트레스받더라도 씻겨야 할 것 같아서요~"


"이렇게 얌전하고 이쁜데 왜 그랬니?"


집사와 그 여자는 주거니 받거니 낄낄거리며 날 씻긴다.

'나 지금 떨고 있니?'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왜 날 그냥 내버려 두질 않는 거니? 가만히 내버려 두면 내가 알아서 나가서 밥도 먹고 화장

실도 가고 내가 지낼 곳도 선택할 건데 말이지….

그 며칠을 못 참아서 나를 괴롭히는 거냐? 멍청이 집사야!!!

그렇게 집사와 나의 첫 번째 전쟁은 나의 패배로 끝났다.


다시 돌아온 집에는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아니 틈이란 틈은 죄다 막혀 있다. 집사가 작정하고 모든 숨을 곳을 다 차단한 것이다.

'지독한 넘!'

'오늘은 내가 그냥 집사 너가 원하는 곳에서 자주마…. 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어!!! 넌 나보다 서열이 아래니까…. 내가 그것을 확실하게 인식시켜 주겠어!!!'

그전에 밥 좀 먹고 맛동산도 좀 만들어야 하고 전쟁터도 좀 돌아봐야 하고….

으음 한숨 자고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