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려동물과 함께하기/냥이일기

제3화. 집사의 정체는 빈곤 백수

집사를 잘못 골랐어!!!

이럴 수가 이런 집사였다니

어둠이 내리고 아직은 쌀쌀한 밤이다.

상자 안에는 완벽한 적막이 흐르고 바깥과는 냉랭한 기운만이 감돌고 있다.

날 괴롭히던 집사도 한풀 꺾인 듯 잠시 나를 외면하고 있다. 덕분에 어젯밤은 나름대로 편안한 밤이었다.

경계를 늦출 순 없었지만 그래도 첫날 둘째 날보다는 조금 더 잘 수 있었다.

사실 어젯밤 집사가 자는 틈을 이용해 여기저기 탐험을 다녔다.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은 집인 듯 몇 군데 말고는 다녀볼 만한 흥미로운 곳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높이의 곳이라곤 옷장 하나뿐인 듯한데 아쉽게도 한 번에 올라가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책상 위나 TV 정도

에 만족해야 할듯하다.

내가 살던 곳에 있던 전용 타워조차 없다. 그저 덩그러니 상자 하나와 화장실뿐이다.

새 집사는 모든 게 초보인듯하다. 그 흔한 장난감조차 안 보인다. 나를 모시려면 기본적인 집이랑 타워 적어도 내 발톱 전용 스크래쳐 정도는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하는 거 아닌가?

박스에 담요 한 장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모든 거란 말인가? 좌절이다.

이건 납치야! 납치가 아니라면 이럴 수 없어!!!

그나마 밥은 내가 먹던 것이라 위안이 되지만 나를 새로 모셨으면 캔 하나 정도는 진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기본이 안 돼 있는 집사 녀석 같으니라고~

그래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으니 며칠간의 시간을 두고 지켜보겠어!!!


일랑이


보통의 집사들은 이 시간이면 자는 게 정상인데 새집 사는 신기하게도 밤에 잠을 안 잔다.

사흘 동안 지켜본 바에 의하면 자는 시간이 제멋대로다.

아무래도 나 빈곤 백수 집사에게 납치된 거 같다.

집사가 잠들어야 나도 이 박스에서 나가 돌아다닐 텐데 저러고 있으니 나갈 수가 없다.

잠을 안 자고 무얼 저리 하는 건지 일단 한숨 더 자야겠다.


으응…. 엄마 엄마인가? 내 머리를 이렇게 달콤하게 쓰담 쓰담 해주는 게 좋다….


기분 좋은 그르릉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고 살며시 눈을 뜨는데 헉!!! 이게 뭐야 집사잖아?

집사가 내 몸을 허락도 없이 만져대고 있었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내 몸 구석구석을 감히….

아흥... 그런데 왜 내 몸이 반응하는 거지? 

이러면 안 돼!!! 한 번 정도는 경고해야 나를 쉽게 안 볼 거야!

털을 세우고 나의 자랑스러운 어금니를 보여야…. 하~

아 빈곤집사 손길이 예사 손길이 아니다….

나는 한여름날의 아이스크림처럼 스멀스멀 녹아내려 버렸다.

나쁜 손 같으니라고….


집사가 책상 앞에서 저 혼자 낄낄거리고 있다.

스윽 고개를 들어 보았더니 저 혼자 뭘 그리 열심히 그려대고 있다. 

모니터에는 캣타워가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었고 나는 내심 드디어 집사가 집사 본연의 임무를 자각한다고 하는 마음에 미소가 번져갔다.


'어떤 걸 사주려나? 나는 이왕이면 높고 넓은 게 좋은데…. 색상은 핑크…. 고양이라면 핑크지…. 아암!!'


집사 몰래 뒤에서 아이쇼핑을 마음껏 즐기며 새로 올 나의 타워가 어떤 걸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는데 집사 녀석 갑자기 고개를 홱~돌려 나를 보는 게 아닌가?


'아앗! 모른척해야지~ 그래야 선물 주는 집사도 행복할 거야... 아암!!난 배려 돋는 고양이니까'


시선을 피해 돌아누워 일단 눈에 초점을 흐리고 약간은 불쌍한 듯 몸의 힘을 빼고 고개는 살짝 돌려 곁눈질을 하면 내 모습이 분명 사랑스러워 보일 거야. 요렇게 말이지….


"집사야~ 시간 많아! 천천히 골라보렴... 다른 건 양보해도 색상은 핑크야~ 알았다냥?"


"일랑아~ 조금만 기다려 아빠가 멋진 놀이터 만들어 줄게 알았지?"


"으응? 모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그래 천천히 되도록 좋은 거로 골라~옹"


"우와! 우리일랑이 아빠가 놀이터 만들어 준다니 좋아? 아이고 우쭈쭈~"


신나 보이는 집사가 내 사진을 찍어도 나는 모른 척 포즈를 잡아주었고 더욱더 신난 집사는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나는 모르는 체하며 포즈를 취해 주었다.


'그래 캣타워를 위해서라면 초상권 정도는 포기해주지 마음껏 찍으렴'


오늘 주문을 하면 이르면 내 일 아니면 이틀 후 정도면 타워가 도착하겠군. 그때까지는 조금이라도 이쁜 척을 해주어야겠다.

타워 다음엔 무엇을 해줄까? 

박스랑 이런 옷상자가 아닌 호박 방석이라도 사주겠지? 

집사는 집사의 임무를 다해야 집사지!!!


그렇게 수십장의 사진을 찍혀주고 만족한 집사는 다시 컴퓨터 앞으로 돌아갔고 난 다시 잠을 청했다.

오늘 밤 꿈에서는 타워 위를 날아다니리라... 핑크색 타워 꼭대기에서 우아하게 창밖을 바라보며 참치로 브런치를 즐기는 내 모습…. 화보가 따로 없을 거야...

얼마를 잤을까 소란스러운 바깥으로 인해 나의 달콤한 잠은 달아나 버리고 집사가 무엇인가를 잔뜩 들고 들어온다.


'타워가 벌써 왔나? 내가 이틀을 잔 거야?'


"일랑아~ 아빠가 힘들게 박스 구해왔어! 조금만 기다려... 멋진 놀이터 선물해 줄게"


불길하다.

집사의 저 표정도 그렇고 바닥에 잔뜩 쌓여있는 저 박스들은 무엇인가?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