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려동물과 함께하기/냥이일기

제7화.침대 접수완료!!!

침대는 내꺼다옹~

하루하루 지나가면서 익숙해지는 걸까?

빈곤한 생활이 주는 스트레스도 조금씩 무뎌져 가고 박스로 만들어진 것들이 소중해져 가고 있다.

나란 고양이 바보 고양이~

구질구질하고 빈티가 좔좔 흐르는 놀이터 펜트하우스에서 내려다보면 탐나는 것이 하나 있다.


일랑이


아직 내가 가지지 않은 하나!!! 응가 테러를 하면 집사가 가장 흥분하는 그곳…. 바로 침대다.

적당한 쿠션에 밟으면 포옥~ 들어갔다 발을 떼면 쑤욱 올라오는 느낌, 따듯한 온기도 항상 올라오는 것이 기분 좋은 곳이다.

집사가 매번 낚싯대를 들고 나를 올라오라고 유혹하는 곳이기도 하다.

운동을 위해 매번 못 이기는 척 올라가 집사를 위해 놀아주기는 하지만 집사가 원할 때는 절대 올라가지 않는 곳….

집사가 컴퓨터를 할 때 살짝 몰래 올라갔다 집사가 나를 바라보면 시크하게 내려가 버린다.

왜냐고? 가지고 싶다고 집사가 원하는 것을 바로 주면 모냥 빠지니까~

하지만 저 침대는 조만간 내 것이 될 거다. 집사가 원하고 원하게 만들어 안달이나 죽어갈 때쯤 못 이기는 척 받아줄 거니까~

지금은 비록 몸을 뒤척일 때마다 박스테이프의 부스럭거리는 소리,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박스 위에 몸을 누이지만 내가 결국 지낼 곳은 바로 저기 침대이다.

화장실 가는 길에 살짝 올라 침대의 탄력을 느끼는데 이놈의 발톱이 문제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쑤욱 박혀서는 내 걸음을 방해한다.

짜증이 난다. 스크래쳐로 달려가 벅벅 긁어보지만 스크래쳐로 해결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물어뜯어 보기도 하지만 침대 위를 걸을 때마다 길어버린 발톱은 성가시다 못해 화까지 난다.

화장실 모래에다가 화풀이를 하려 하지만 변기훈련 시킨다고 안락한 화장실을 없애버린 집사넘이 만들어 놓은 화장실은 맘 편하게 모래를 긁지도 못한다. 

일랑이 침대에 오르다


'빌어먹을 집사!!! 맘 편하게 볼일도 못 보게 하고 확 침대에다 테러할까 보다'

게다가 볼일 보고 모래로 뒤처리를 하려 할 때마다 뭐가 그리 급한지 쪼르르 달려와 화장실 청소를 하는 이럴 때만 부지런한 집사 때문에 볼일 보고 뒤도 못 닦은 양 나와야 하는 찝찝함….

그나마 화장실이 항상 깨끗하기에 봐주고 있는 거다.


오늘은 하루종일 웬일인지 집사가 나를 건드리지 않는다. 덕분에 편안한 잠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실컷 자고 나니 심심해진다. 오늘은 또 어떤 사고를 쳐서 집사를 멘붕에 빠트릴까?

집사가 멘붕에 빠지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즐겁다.

박스 끝에 턱을 괴고 집사를 내려다보며 궁리를 한다. 커튼에 구멍 내기, 이불에 테러하기, 휴지 운동, 물그릇 뒤집기, 싱크대에 올라가기, 변기 물 마시기, 사고 칠 거리는 많지만, 딱히 마음을 사로잡는 게 없다.

일단 내려가자 내려가서 천천히 생각해 보자.

박스로 만들어진 계단은 뛰어내릴 때마다 푸석푸석한 소리를 낸다.

바닥에 주저앉아 몸단장하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집사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짠한 마음이 든다.

매일 그렇게 앉아서 직접 만드는 고양이 용품을 찾고 있는 빈곤집사, 돈이 많다면 고양이 쇼핑몰을 뒤지고 있을 터인데 그래도 나에게 상납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는 게 짠하다.


'아니다 여기서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 집사는 자기가 해야 할 의무를 하는 것일 뿐이다.'



심심하기까지 한 낮시간이 흐르고 있다. 겉으로 보면 집사가 일하고 나는 한가로이 그루밍을하는 그림 같은 장면이다.

그러나 남들은 모를 것이다. 빈곤한 집사는 오늘도 허접스러운 무언가를 만들 궁리 중이고 나는 그런 집사를 멘붕에 빠트릴 사고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오늘은 웬일인지 모든 것이 귀찮다. 사고 칠 궁리도 집사를 놀려먹을 일도….

봄이라 그런가? 실컷 잠을 잤는데도 나른하다. 그루밍도 대충하고 말 정도로 노곤한 오후다.

생각 없이 침대로 올랐다. 침대의 포근함과 따스함을 온몸으로 즐기며 눈을 감았다. 이내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인기척에 눈을 떠보니 하트모양으로 변한 눈을 연신 껌뻑이며 집사가 나를 만지고 있다.


"아이고 우리 일랑이~ 피곤해 쪄요? 이젠 침대에도 올라와 자고 아이구 이뻐요~ 아빠랑 같이 자까요?"


'집사야 너 나자는 동안 혀라도 씹었니? 왜 혀 짧은소리를 하고 그러냐?'


평소였으면 바로 집사의 손길을 거부하고 옷장 위로 갔겠지만 귀찮다…. 발가락 하나 까닥하기도 싫다.

그냥 모른 척 눈을 다시 감았다. 저러다 말겠지….

일랑이 잠자기


"우와 우와~ 우리 일랑이가 웬일이에요? 아빠랑 같이 자려구요? 그래요 같이 자요~"


나의 무심한 반응에 더 흥분한 집사가 호들갑을 떤다. 내가 행여 깰까 봐 조심조심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집사, 웃긴넘 그냥 들어가도 오늘은 그냥 내버려 둘 건데 말이다.

집사가 뭘 하든 말든 그저 난 이 시간의 여유를 즐길 뿐이다.

다만 집사가 나의 이 여유를 깨지 않길 바라면서….

얼마를 졸았을까? 어둑어둑 밤이 찾아오고 내 옆에서 코를 골며 자는 집사의 몸부림에 잠이 깨어버렸다.

한껏 기지개를 켜고 물 한 모금 마시고 책상 위로 뛰어올랐다.

켜져 있는 모니터에 빈곤집사의 블로그가 떡하니 열려있다. 언제부턴가 인간의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글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천재 고양이다. 믿거나 말거나 말이다...

포토구라퍼?  집사가 사진 찍는 걸로 나를 봉양하는 거였구먼….

그런데 왜 내 사진이 올려져 있고 내 얘기가 쓰여있는 거냐?

하나하나 읽다 보니 집사 이넘 나를 팔아 용돈 벌이를 하고 있다. 블로그에 집사일기를 쓰며 내 얘기를 제멋대로 해석해서 쓰고 거기다 광고까지 붙여서 돈벌이를 해? 그러면서 나에게는 구질구질한 박스로 집 만들어주고 그러고 있단 말이지?

괘씸하다. 하지만 일단은 두고 보겠다. 내 얘기로 아주 소설을 쓰고 있다.

오늘 내가 침대에서 같이 자 준 것도 조만간 올라오겠구나…. 분명 집사 넘은 내가 자기랑 친해져서 침대에 올라와 같이 잤다고 신나서 쓰겠지…. 사실은 그게 아닌데 말이다. 그래 열심히 날 팔아서 돈을 벌어라. 단 그 돈을 날 위해 사용하지 않을 때는 처절한 응징이 있을 것이다.

집사가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모른 척 박스 펜트하우스로 올라가 딴청을 부렸다.

냉장고에서 물 한 통을 꺼내 든 집사는 교양 없이 병째로 들고 벌컥벌컥 마시고는 시시덕거리며 집사일기를 쓰고 있다.

제목이 '겁쟁이 고양이 일랑이 드디어 침대에 오르다.'

누가 겁쟁이란 말인가? 그리고 돈만 빈곤한 게 아니다. 생각과 상상력도 참 빈곤하다.


어쩜 저리 내가 예상한 것과 한치도 다름없는 글을 쓰고 있는지….